미니멀라이프

“정리를 못하는 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다”

habitar 2025. 6. 30. 07:00

— 세 아이를 키우며 시작한 현실적인 비움의 여정

 

1.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엄마, 비우는 삶을 동경하다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사를 다섯 번쯤 해도 짐은 줄지 않았고,
아이는 셋인데 물건은 열 집 살림 같았다.
장난감 박스, 학원 프린트물, 입지 않는 옷더미,
그리고 애들만큼 자라버린 내 죄책감들.

SNS에서 본 미니멀라이프는 마치 꿈처럼 보였다.
하얗고 텅 빈 거실, 딱 세 벌만 걸린 옷장.
하지만 그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들 싸움 말리고,
식탁 위 밀린 빨래를 밀쳐두고 밥을 차린다.
정리는커녕 유지도 힘든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주방 정리를 하다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삶은 내가 선택한 삶인가, 아니면 떠밀린 삶인가.”
그날부터 내 안의 ‘비움’에 대한 열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리를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시작해보자는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정리를 못하는 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다”

2. 정리를 못해도 괜찮아: 육아 중심 미니멀의 첫걸음

육아는 늘 예측 불가다.
아침에 치운 거실이 오후엔 전쟁터가 되고,
정리한 책장은 아이들 손에서 다시 흐트러진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미니멀라이프 대신, 실천 가능한 미니멀라이프를 선택했다.

첫 번째로 버린 건 ‘비워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정리에는 실패해도 괜찮다.
하루에 딱 하나만 정리해도 된다.
처음엔 다 쓴 볼펜 하나,
다음 날엔 입지 않는 아이 옷 한 벌.

나는 세 아이가 모두 자는 밤에
딱 10분씩만 정리 시간을 정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그 10분이
나에겐 주도권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비워낸 공간은 생각보다 컸다.
쌓아두었던 이유 없는 설명서들,
유통기한 지난 약 봉투,
미련으로 남겨둔 선물 포장지.

이 작은 비움이
나에게 숨 쉴 틈을 주었다.
“정리를 못하는 나도, 조금씩은 바뀌고 있다.”
그 믿음이 하루를 지탱해주는 힘이 됐다.

 

3. 비움은 물건보다 감정을 먼저 정리하는 것

 

어느 날, 장난감 상자를 정리하다가 멈췄다.
아이 둘째가 아기였을 때 물려받은 딸랑이.
지금은 쓰지 않지만, 그 딸랑이는
나에게 처음 엄마가 되었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사진으로 기록한 후, 조용히 포장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웠다고 말하며 보냈다.

정리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물건을 쥔 손보다, 그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이 더 무거웠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내 역할도 달라져야 했다.
엄마의 공간도, 생각도 자라야 한다.

비움은 결국
지나간 시간에 작별을 고하고,
지금의 나를 더 선명히 바라보는 연습이었다.


4. 나를 위한 공간 한 평, 그리고 계속되는 여정

지금도 내 집은 미니멀리스트의 집처럼 보이지 않는다.
벽에는 아이들의 낙서가 있고,
거실은 오늘도 장난감과 책들이 흩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한 평의 공간,
나만의 책상은 언제나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공인중개사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이렇게 글을 쓴다.

이 작은 공간 하나가,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정리를 못하는 나는 지금도 여전히 물건 앞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만들어준다.

미니멀라이프는 끝이 아니다.
지속적인 점검, 반복되는 선택, 그리고 나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
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리를 못하는 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다”
 본문2 기본서체 
“정리를 못하는 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다”
 본문2 기본서체 



기본모드